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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의 말씀(18): 거듭남과 천국

JDBS 2018.05.09 08:45 조회 수 : 507

5월을 가정의 달로 지킵니다. 
오늘은 어린이 주일, 다음 주일은 어버이 주일, 셋째 주일은 성령 강림주일, 넷째 주일은 가정 주일로 지킵니다.

오늘은 어린이 주일(Children’s Lord Day)입니다. 대부분 교회에서 5월 첫째 주일을 꽃주일 혹 어린이 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어린이의 인권과 사랑과 보살핌에 대해 많은 나라가 어린이날을 지키고 있습니다. 1923년부터 한국은 소파 방정환 선생의 주창으로 일제 치하였지만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지켜 온 것을 남한에서는 1961년 공식 제정이 되어 공휴일로 지켜오다가 1975년부터 공식 공휴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올해 2018년은 토요일이어서 5월 7일에 대체공휴일로 지킵니다. 북한과 중국은 6월 1일을 국제아동의 날(International Children’s Day, 兒童節)로 지키고 있으나 공휴일은 아닙니다. 일본도 단오일인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지키고 있습니다. 1954년부터 유엔과 유네스코는 11월 20일에 세계 어린이날(Universal Children's Day)을 기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슬람 국가에서는 이슬람력으로 5월 5일인 7월 4일을 어린이날로 지내고 있습니다. 아르헨티나는 어린이날(Día del Niño 디아 델 니뇨)이 8월의 두 번째 주일입니다. 캐나다는 11월 20일로 지키며, 태국에서는 매년 1월 두 번째 토요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어린이에 대해 양면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긍정적인 면은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하나님 왕국(천국 the kingdom of heaven)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마 18:3, 막 10:14~15, 눅 18:16~17). 예수님의 이름으로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마 18:5). 이때 말하는 어린이는 천진난만하고 순전하고 정직하며 간사함이 없고 겸손하고 죄악 때가 묻지 않고 순종 잘하며 부모를 100% 믿고 온순하고 겸손한 어린양과 같은 모습을 말합니다(마 11:25, 21:16, 눅 2:41~52, 벧전 2:2)

예수님께서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lamb)으로 오셨습니다(요 1:29). 부활의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당부하시기를 “내 어린양들을 먹이라 Feed my lambs!”(요 21:15)고 사명을 주셨습니다. 목회자들의 사명은 주님의 어린양들을 바르게 먹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어린양이지 목회자의 어린양이 아닙니다. 이를 착각하면 안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했던 첫 유월절에 1년된 수컷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발랐습니다(출 12:3~7)

 부정적인 이미지로 어린이는 유치하며 이기적이고 욕심이 많고 미숙하다는 것입니다(childlike).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고전 13:11).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라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되라” (고전 14:20)

어떤 아이들은 욕심이 많아 자기 음식을 절대 주지 않고, 소리 지르며, 어른들에게 인사를 하지 않고, 심지어 남의 물건을 훔치기도 합니다. 세 살적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유대인들은 3살에 되기 전 좋은 습관을 가지도록 유아교육을 철저히 시킵니다. 쉐마교육도 3살 때까지 완성시킵니다. 이처럼 어린이는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이를 보는 눈(관점)을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어린이를 보는 견해, 각도, 관심을 예수님께서는 완전히 전과 다르게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예수님 이전에 사람들이 어린이를 대하는 모습보다 예수님께서 그 아이에게서 귀한 하나님의 자녀로 보도록 하셨습니다. 다른 이방 종교나 사탄종교에서는 어린이를 제물로 쓰기도 했습니다.

역대기 하 33:1-6에 보면 므낫세 왕 때에 이방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서 아세라 목상을 만들어 일월성신을 숭배하여 섬길 때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뽑아 놓은 아이들을 피워 놓은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여 태워 죽이거나 안 들어가려는 어린이를 덥석 안아다가 불 가운데로 집어넣어 주문을 외우고 제사했습니다. 무지한 세계 각처에서는 잘 생기고 똑똑한 어린이를 뽑아서 잡신이나 우상에게 드리는 제물로 사용했고 바닷가에 사는 무지몽매한 어부들이 해상 사고가 없게 해달라고 굿을 하고 비는 축제에 어린이를 끌고 가서 가라앉으라고 돌을 붙들어 매어서 바다속 깊이 던지며 용왕의 보호를 비는 일도 있었습니다. 도덕을 가장 많이 말하는 유교도 보면 어린이를 푸대접을 했습니다. 그것은 논어나 기타 유교 서적이 말해줍니다. 어린이에 대한 가르침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때부터 어린이를 보는 눈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온 후 아동들의 인권이 달라졌습니다. 소학교를 통해 교육하고, 아동복지, 아동인권에 대해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예수님의 제자들까지도 마가복음 10:13-16에 보면 어린이를 소중히 여기지 않고 예수님께로 오는 것을 금했습니다.

그러므로 축복해 달라고 데리고 온 아이들의 부모에게 방해한다고 소리치는 제자들을 보면서 예수님께서 매우 민망해하셨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예수님께서 보시고 화를 내시며 말씀하시기를 ‘어린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왕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막 10:13~15) 사실 그 당시 유대인들의 눈 속에는 어린이 같은 것은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20세 이하의 어린이는 인구센서스에서 제외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진정 어린이 하나하나를 영접하시고 사랑하시며 축복하셨습니다. 어린이를 영접하고 대접하는 것이 곧 예수님께 하는 것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마 10:42, 18:5. 25:40, 25:45, 눅 9:48, 17:1-2). 예수님께서 어린이의 영혼이나 어른의 영혼을 모두 한가지로 소중히 보셨기 때문입니다.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어린이의 도시락을 받으셔서 장정만 5000명(어린이, 노인, 여성들 포함하면 2~3만명)을 먹이셨습니다(마 14:31-21, 막 6:30-44, 눅 9:10-17, 요 6:1-14). 사무엘은 엄마 젖을 떼던 날부터 성막에서 예배를 수종들었습니다(삼상 2:18~26).

 예수님께서는 어린이들을 보실 때 당장에 나타나는 그 얼굴, 그 모습만 보신 것이 아니라 20년 후, 30년 후를 내다보십니다. 이른 봄에 꽃 나무에 손질을 할 때 그 잎도 돋지 않은 그 식물을 보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얼마 후에 아름답게 꽃을 피워 그 주위를 그윽하게 해 줄 것을 연상합니다.

예수님께서 다음 세대를 내다보시면서 그들의 가치를 찾는 것입니다. 어린이는 제 2세대의 주인공입니다. 예수님은 장래를 어린이에게서 기대했습니다. 시간의 문제이지 시간만 흘러가 보십시오. 오늘의 어린이가 장차 훌륭한 목회자, 선교사, 학자, 선한 사업가, 기술자, 예술인, 대통령, 국회의원, 과학자, 의학자, 법학자, 경제학자, 훌륭한 교육자도 되고 루터나 칼빈 같은 위대한 종교 지도자도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다만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인데 어떻게 이런 어린이를 무시하거나 등한히 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이렇게 장래를 내다보실 때에는 그 어린아이가 얼마나 귀하게 보였는지 모릅니다. 사람이란 다 어린이의 시절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 교회 어린이는 다음 세대에 교회의 기둥입니다. 교회는 얼마 후에는 오늘의 어린이의 것입니다. 오늘의 성도들이 20년, 30년 뒤를 내다볼 때에 오늘의 주일학교에 대해서 우리 장년들이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자녀를 가진 부모들도 예수님이 보시는 어린이를 생각하면서 장차 교회의 기둥이 될 어린이를 일반 교육에만 열중시킬 것이 아니라 기독교 교육을 어려서부터 착실한 신앙생활의 터전을 마련해 주는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니고데모(Nicodemus)가 예수님을 존경하여 밤에 주님을 방문했습니다. 이 시간은 주님과 제자들이 저녁식사 후 진리에 대해 공부하며 깊은 교제를 나누는 카두쉬(Qadush) 시간이었습니다.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었는데 바리새인(Pharisee)이란 BC 164년에 마카비 독립운동의 결과 시리아로부터 예루살렘 성전을 재탈환(하누카=수전절, 요 10:22)하여 청소를 한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드려졌습니다. 이때 사독 대제사장 집안에서는 세상의 정치에 적극 개입하여 하스모니언(Hasmonean) 통치가 시작되어 신약시대의 사두개인(Zadok → Sadducee)입니다.

헤롯은 이두매 출신입니다만 하스모이언 가문과 결혼함으로 사두개인의 가족이 되어 유대왕까지 하게 됩니다. 사두개인들은 모세의 오경만 정경으로 받아들이고, 천사의 존재도 부활도 믿지 않았습니다. 이에 반해 바리새인은 세상 정치와는 단절하고 금욕주의 경건생활 구제와 기도생활에 힘을 썼습니다. 예수님 당시 약 6000명의 바리새인들이 있었고 이들 중 다수가 당시 법정 최고의회인 산헤드린(Sanhedrin, 150명으로 구성됨, 대제사장을 지낸 분들, 바리새인 지도자들, 사두개인 지도자들, 백성의 장로들로 구성)에서 봉사했습니다.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으로 산헤드린 공의회 회원이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오늘 본문(요 3:1~21) 말고도 두 번 더 활동사항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요 7:50~52에 보면 예수님에 대해 사람(하속들)을 보내어 알아보게 했는데 이들이 돌아와 산헤드린에 보고하면서 아무런 약점이나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하고 그렇게 능력있는 말씀을 전하는 분을 발견하지 못했노라고 보고하니(요 7:46) 바리새인들이 화가 나서 “너희들도 미혹되었느냐?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이가 있느냐?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 (요 7:48~49) 이에 그 중에 한 사람 곧 전에 예수님께 왔던 니고데모가 동료 바리새인들에게 말하되“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판결하느냐?” (요 7:51) 반박했습니다. 바리새인 가운데도 예수님을 인정하는 니고데모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동료 바리새인들을 그를 비난하면서 말하기를“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상고하여 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하였습니다(요 7:52).

또 한번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던 날 저녁에 몰약과 침향을 섞은 것을 100 리트라를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죽으심을 조의했습니다(요 19:39~42) 그는 예수님께서 살아계실 때 그분에게 기름 부을 기회를 놓쳤지만 주님께서 죽으신 후 그 시신을 자신의 목숨을 걸면서까지 향료로 발랐습니다. 캐톨릭과 정교회의 전설에 의하면 니고데모는 이후에 기독교 신자가 되어 복음을 전하다가 유대인들에의해 순교를 했다고 합니다. 

바로 그 니고데모가 밤중에 주님을 찾아와서 말하기를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하니 예수님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수 없느니라 Verily(Amen), verily(amen), I say unto thee, Except a man be born again, he cannot see the kingdom of God.” (요 3:3) 여기서 다시 태어나다는 것은 “위로부터 태어남 born from above”입니다. 니고데모가 대답하기를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반응하니예수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Verily(Amen), verily(amen), I say unto thee, Except a man be born of water and of the Spirit, he cannot enter into the kingdom of God” (요 3:5)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and that which is born of the Spirit is spirit”(요 3:6)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Ye must be born again.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The wind bloweth where it listeth, and thou hearest the sound thereof, but canst not tell whence it cometh, and whiter it goeth: so is every one that is born of the Spirit.” (요 3:7~8)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 증거를 받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Son of man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his only begotten Son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무궁한 생명 the everlasting life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9~16) 

물과 영으로 거듭난다는 말은 말씀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엡 5:26) ’너희는 일러준 말로 인하여 깨끗하게 되었으니“ (요 15:3),

낳는 것(born)과 거듭남(born again)의 차이는 낳는 것(bear, bore, born)은 육신의 어머니가 9개월 반을 태에 품어 낸 자녀를 출산하는 것을 말합니다. 거듭남(born again)은 내가 육체 안에서 혼에 말씀이 접목되어진 것을 말합니다. 곧 하나님의 생명이 수정되어진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완전한 아들은 거듭나서 완전한 자녀로 자라가야 하며 성화(sanctification) 되어져 완전하게 되라는 것입니다. ”하늘의 아버지께서 온전하심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마 5:48). 그래서 주님께서는 니고데모 뿐만 아니라 산헤드린 공의회 회원들, 바리새인들,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 그리고 온 세상 사람들이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형상 즉 모양을 닮은 사람으로 부활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지금 우리는 진리로 낳아(begat)진 거듭나 있는(born again) 상태입니다. 이제부터 완성된 구원을 향하여 자라나야 합니다. 낳아진 것이 자라서 완전(perfection)해 지는 것인데 자라지 않으면 완전해질 수 없습니다. 야고보서 1:18에 ”그분 자신의 뜻으로 우리를 진리의 말씀으로 낳으셔서 begat 우리로 그의 피조물들 가운데 첫 열매들에 속한 자들이 되게 하셨으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실 때 여인이 아기를 낳는다는 표현을 하십니다. “여자가 산고 중일 때는 자기 때가 이르렀음으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고 나면 세상에 사람이 난 a man is born into the world 기쁨으로 인하여 그 고통을 더 이상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요 16:21).

여기서 주님께서 성육신(incarnation)을 하실 때 어머니로부터 태어남(born)을 쓰십니다. 마태복음 1장 2~15절에서 동사는 “그의 아비가 되고”의 뜻인 begat (beget – begat – begotten)을 사용했지만 예수님의 탄생에서는 요셉은 빠지고 마리아로부터 예수님께서 탄생하시니라고 되어 있습니다(Mary, of whom was born Jesus, who is called Christ, 마태 1:16). 사실 예수님과 요셉은 아무런 관련이 없고 다만 호적상 요셉의 아들로 되어있을 뿐입니다. 캐톨릭에서는 마리아를 성모나 하나님의 어머니(Theodokos)로 숭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마리아는 그저 인간일 뿐이고 성령께서 잉태하여 마리아의 몸을 빌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임마누엘 하신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And the Word was made flesh, and dwelt among us” (요 1:14)

마리아는 육신을 낳았지만 다윗의 씨를 입고 태어나신 예수님은 육체를 벗고 하나님의 아들로 부활하셨습니다. “이 복음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에 관한 것으로, 육신으로는 다윗의 씨에서 나셨으며, 거룩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드러나셨으니” (요 1:3-4),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는 시작이시며 죽은 자들로부터 첫 번째로 나셨으니, 이는 그가 만물 안에서 으뜸이 되려 하심이라” (골 1:18) 주님의 부활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 “물과 영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왕국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에서 거듭남이란 “하나님의 완전한 아들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현재 진리(복음)로 낳아진 상태에서 거듭났다라고 착각하고 자라나지 않으니, 자라나지 않으면 완전케 될 수 없습니다. 거듭남이란 하나님께로부터 다시 태어나 (begat) 육체 안에서 자라 완전케 되어 부활하기까지를 말합니다. 다시 태어나서 말씀으로 양육을 받고 믿음이 자라서 하나님의 뜻에 합한 자가 되어 구원을 완성하는데 까지 자라야 합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엡 4:13-16) 예수님의 믿음까지 자라야 합니다.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야 합니다(빌 2:12). 거듭남의 완성이 곧 부활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니고데모는 새로운 세계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총신대 신학과 신국원 교수님은 니고데모의 안경이란 저술을 통해 이를 주장합니다. 신교수님은 말하기를 성겨적 세계관은 성경의 삼중 진리인 창조 – 타락 – 구속의 관점에 기초해서 삶의 의미와 목적을 바라보는 비전을 제시합니다. 요한 칼빈 목사님은 성경에 대해 “자연인의 안목을 고쳐 주는 안경”이라고 지칭했습니다. 또 레슬리 뉴비긴은 성경에 대해 ‘바라볼 look’ 책이 아니라 ‘통해서 볼 look through’ 책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어떤 관점에서 인생과 세상과 역사를 보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니고데모는 거듭남과 하나님의 왕국에 대한 관점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믿음과 거듭남이 안경을 주님으로부터 선물로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에게 복음의 진수인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분을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무궁한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ly begotten Son, that whosoever believeth in him should not perish, but have everlasting life.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분으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6~17)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세계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새롭게 만나 다시 태어나서 죄사함 받고 새사람으로 거듭나서 믿음과 말씀과 사랑 가운데 꾸준히 자라나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으로 부활 되시기를 바랍니다. 물과 영으로 다시 태어나 하나님의 어린아이로 천국의 주인공이 되시기 바랍니다.

찬 421장(통 210장)

1. 내 죄 사함 받고서 예수를 안 뒤 나의 모든 것 다 변했네.
지금 나의 가는 길 천국길이요 주의 피로 내 죄를 씻었네.
나의 모든 것 변하고 그 피로 구속 받았네.
하나님은 나의 구원 되시오니 내게 정죄함 없겠네-.

2. 주님 밝은 빛 되사 어둠 헤치고 나의 모든 것 다 변했네.
지금 내가 주 앞에 온전케 됨은 주의 공로를 의지함일세.
나의 모든 것 변하고 그 피로 구속 받았네.
하나님은 나의 구원 되시오니 내게 정죄함 없겠네-.

3. 내게 성령 임하고 그 크신 사랑 나의 맘에 가득 채우며
모든 공포 내게서 물리치시니 내맘 항상 주 안에 있도다.
나의 모든 것 변하고 그 피로 구속 받았네.
하나님은 나의 구원 되시오니 내게 정죄함 없겠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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